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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와 약수의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 감응사 *감응사는 802년(신라 애장왕 3)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는데, 체징이 창건하였을 당시에는 감은사 혹은 감응암(感應庵)이라 하였다. 창건 이후 수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으나 임진왜란 이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75년(숙종 2)에 중창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에 중수, 1780년(정조 4)에 또 중수, 1921년에 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최근에는 1970년대에 들어서 평타 스님이 영선원을 세우고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애장왕의 왕자와 독수리의 이야기, 감응사의 전설 *감응사의 창건설화에 따르면 애장왕이 늙으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왕자는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왕비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인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다.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는 곳에 이른다. 그 약수로 눈을 씻고 약수를 마시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다음날 도인의 말대로 독수리를 따라가니 과연 약수가 있었고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이 나았다. 애장왕은 이를 부처의 은덕으로 여겨 약수 앞에 감응사를 세우고,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신령스러운 독수리산이란 뜻에서 영취산이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절 앞에 있는 약수는 옥류정(玉流井)이라 하는데, 지금도 물맛이 차고 달아 많은 사람이 찾는다.
2019-11-24남원향교는 1410년(태종 1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부(府)의 서쪽인 대곡산(大谷山) 기슭에 창건하였다.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의 침해가 있는 까닭에 1428년 부의 동쪽 덕음봉(德蔭峰) 밑으로 이건하였다가, 홍수 때 길이 막히는 일이 많아 1443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 1599년에 진사 유인옥(柳仁沃)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건하였고, 1609년 감사 윤안성(尹安性)과 부사 성안의(成安義)의 찬조로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748년에 진사 한동섭(韓東攝)이 동재·서재를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하여오다가, 1876년에 화재로 명륜당과 서적이 유실되었으며, 그 뒤 부사 오달선(吳達善) 등 유림이 협력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892년에는 부사 민종렬(閔鍾烈)이 대성전 등을 수리하는 등 계속적인 보수를 하여왔으며, 1982년에는 국가보조금으로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7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유림들이 위성계(衛聖稧)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소장전적은 253종 821책으로 전라북도 향교 중 가장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 이 중 필사본인 ≪향안 鄕案≫·≪완의 完議≫·≪청금록 靑衿錄≫ 및 절목류들은 지방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2019-11-03관성솔밭해변(구, 관성해수욕장)은 맑고 푸른 청정해역으로 이미 인정 받은바 있으며, 송림과 해안이 어우러져 반원형을 그리고 있다. 인근 양남면 신대리에는 콩오롱 골프장이 있어, 해양레저와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다.백사장 : 길이 1.3 ㎞, 폭 30-70m1988년 개장
2019-11-24성산아트홀은 21세기 창원시의 외형적 성장만이 아닌 일상속에서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친근한 클래식의 매력과 멋이 넘치는 문화 창조를 위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열어 시민들의 문화, 휴식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성산아트홀 주무대인 대극장, 스타디움 형식의 소극장, 야외공연장 2곳, 7개의 전시실을 갖춘 실내전시장, 휴식공간, 기타 야외전시장 등 경남 최대의 시설과 규모를 갖추고 있다.* 개관일 2004년 4월 25일
2019-11-24예천군 용궁면 금남리(금원마을)소재 동신목(팽나무)으로 나무나이가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로 높이는 15m,둘레는 3.2m이다.사람처럼 황씨성 목근이란 이름으로 토지를 소유하여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12,232㎡)를 소유한 부자나무로 5월이면 누런꽃을 피운다하여 성을 황, 근본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이름을 목근이라 지었다고 한다. 금원마을에서 이 나무는 매년 정월 보름을 기하여 축·제관을 선정, 태평성대와 마을 평화를 기원하는 당제를 올리고 다음날 주민들이 함께 모여 뒷잔치를 열고 있다.
* 소유자 : 국유
숙종 36년(1710)년 건립. 현감 박수근이 그의 아우 세 사람과 강학을 하던 곳이라 하여 사로당이라 하였다. 이 건물은 현감 박수근이 그의 아우 세 사람과 강학을 하던 곳이라하여 사로당이라 불리는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별당으로 조선 숙종 36년(1710)에 세워졌다.지면에서 1.2m 높이에 마루가 설치된 공상식의 건물로 정면3칸 중 왼쪽 끝 1칸과 오른쪽 모퉁이를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를 대청마루로 하였다. 2단의 잡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장방형의 양봉과 주두가 결구되었다. 가구는 5량으로 앞 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사다리꼴의 대공을 세웠다. 사방에 간결한 난간이 둘려있고 온돌방의 창호가 알맞게 짜여져 있다. 공상식의 특징을 갖춘 전형적인 별당 건축이다.
2019-11-25‘도남(道南)’이란, 북송의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의 유학 전통은 바로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이 서원은 탄생하였다. 1605년(선조 38) 4월, 전 주부 등 8인이 묘우를 세워 유현을 모시기로 발의하고 통문을 내었으며 5월에 옥성서당에 모여 서원건립을 의결하였는데 회원은 60인이었다. 1606년(선조 39) 6월, 연악서당 회의에서 낙동강 무임포에 서원 자리를 정한 후 동년 12월 정몽주(鄭夢周),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오선생 위판을 봉안하였다. 1616년(광해군 8)에는 노수신(盧守愼), 유성룡(柳成龍), 1635년(인조 13)에는 정경세(鄭經世)를 추가배향하였다. 1676년(숙종 2)에 사액(賜額)된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으나,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2019-11-24캐나다 참전비는 북면 이곡리 도로변에 있다. 500평의 대지 위에 높이 0.7m의 기단 위에 6.5m의 비가 중앙에 세워져 있으며, 비 기단 중앙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의 오른쪽에는 참전약사가, 왼쪽에는 캐나다의 상징탑이 세워져 있다. 이 참전비는 가평지구 전투(1951.4.24~4.25)를 기념하기 위해 1975년 11월 7일 유엔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민이 건립하였으나 1983년 12월 30일 가평군이 재건립한 것이다. 입구 오른쪽의 기념비석은 2003년 7월 29일 캐나다에서 휴전 50주년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캐나다는 한국전쟁 참전으로 사망 309명과 1,203명의 부상자, 그리고 32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1차대전 이후 최대의 희생이라고 한다.- 부지면적 : 500평
- 비 재원 : 기단 0.7m, 층높이 6.5m
- 비문내용 : 자유와 세계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이 땅에서 공헌한 모든 캐나다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길이 역사속에 보전하기 위하여 이곳 옛 격전지에 이 기념비를 세우다